공간의 몽상 Die Träumerei des Raums
몽상은 우리로 하여금 무한한 이미지를 경험케 하며, 우리는 그 몽상 속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그것을 우리 자신만이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공간 역시 그러하다. 공간은 스스로 몽상한다. 자신의 무한한 내부 세계에서 꿈을 꾼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무한은 우리들의 내부에 있는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즉, 무한은 공간의 내부에 존재한다. 이 공간 속에 우주의 끊임없이 생성되는 별들처럼 무수한 몽상들이 자란다. 몽상은 공간의 역동적이고 무한한 몸짓들이다. 그렇다면 공간의 외부는 존재하는가? 공간의 내부처럼 공간의 외부 또한 무한하다. 공간의 내∙ 외부는 공존하나 경계가 불투명하여 늘 서로 도치된다.
몽상의 무한함은 파랑이다. “파랑은 경계가 없는 무한한 차원의 색, 위대한 색이다.” (에바 헬러) 이 무한함은 투명성을 상징한다. 공간이 깊어지면 투명한 공기와 물, 하늘과 바다가 파랑으로 물든다. 파랑은 비현실적 상상력의 색이다. 상상력이 강한 파랑은 몽상을 극대화하며, 우리를 더 무한한 공간의 내부 세계로 이끈다. 즉, 파랑은 공간의 잠재적 가능성을 의미한다. 여기서 가능성은 ‘물질적 몽상’의 무한성을 의미한다: 몽상은 비현실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물질로서 생겨나고 확장하는 하나의 유기적 존재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내부 속에 무수한 몽상들을 부화한다. 이 부화된 몽상들은 작가의 작품에 투영되고, 투영된 몽상들은 스스로 드넓고, 드깊은 몽상을 한다. 나 역시 끊임없이 몽상한다…
그림자 와 투명성
그림자는 두 가지의 의미를 ‒ 존재와 부재 ‒ 지닌다. 즉, 이중 상징을 소유한다: 그림자는 실제 사물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자인 동시에 그 자체는 사물로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부재자이다. 가스통 바슐라르에 의하면 하나의 복사 또는 허상 이미지는 실제의 사물 또는 하나의 사실적 이미지를 추구한다. 물론, 그 허상은 존재의 부정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잠재적 에너지다. 잠재적 에너지에 의해 허상은 실제의 이미지와 혼돈된다. 이를 바슐라르는 “상호적 이미지images mutuelles” 라 명명한다.
투명성은 끊임없이 상상력을 만들고 확장하는 유동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동시에 한 공간 안에서 활력을 행하는 무한함을 암시한다. “무한은 움직임 없는 인간의 움직임이다. 무한은 조용한 몽상의 역동적인 성격의 하나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인간의 상상력이 활동하는 공간은 어떤 공간이든 무한하다. 그 상상력은 공간이 작거나 좁을수록 더 강해진다. 그러나 인간뿐만 아니라 공간 역시 자신에게 내재된 상상력을 표현하다. 즉, 공간은 인간의 상상력과 결합함과 동시에 자신의 상상력을 투영한다. 그리고 바슐라르의 말처럼 상상력은 실제의 가치를 증대시킨다.
공간과 나무
그림 속의 공간은 한정된 것이 아닌 스스로 연속적으로 팽창하는 투명한 존재이다. 그것은 잠재적인 현존으로 이해된다. 편재되어 자라는 나무는 내적 공간을 넘어 외부로 자라는 상상력의 잠재 에너지를 상징한다. 공간과 나무는 하나의 직접적 상호관계에 있다: 그들의 존재는 단, 그들이 동시에 있을 때 인식되어 질 수 있다. 나의 작업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공간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공간 Der Raum = 공기 Die Luft
“공기의 삶은 현실적인 삶인 반면 대지 (위)의 삶은 가공의 삶, 사라지기 쉽고 아스라한 삶인 것이다. 숲과 바위들은 어렴풋하며 사라져 버리기 쉽고 진부한 대상들이다. 삶의 진정한 고향은 푸른 하늘이며, 세계의 ‘자양분’은 바람결과 향기들이다. ” (가스통 바슐라르)
소위 말하는 대지적 삶이 현실적 삶이며 공기적 삶은 비현실적인 관념일 뿐이라는 것에 반하는 바슐라르의 위와 같은 사고는 공기가 갖고 있는 물질적 상상력을 강조한다. 공기야말로 물질적 원소 – 대지, 물, 공기, 불 – 들 중에 가장 광범위하게 꿈을 확대시키는 원소이며 공간의 기억 또한 공유한다. 공간과 공기는 늘 공존하며 공기는 공간의 기억, 꿈 그리고 몽상하는 것을 더욱 확장시킨다. “세계의 ‘자양분’은 바람결과 향기들이다.” 물질적인 숲과 바위가 퇴화되고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반면 모든 것의 자양분인 바람과 향기는 그것들의 포자를 끊임없이 퍼트린다. 즉, 공기의 상상력은 무한한 확장의 힘을 갖고 있으며, 공간의 물질적 상상력의 자양분이 된다.
“공기의 상상력은 기화되어 날아가 버린 상상력”이라고 잘못 이해되지만 상상력의 역동적 측면에서 본다면 공기는 자유를 상징한다. 공기의 자유는 “말을 건네고 빛을 발하며 하늘을 난다. […] 낭랑함과 반투명함, 동적인 것의 삼위일체를 투사한다.” (가스통 바슐라르) 공기는 때론 순수한 바람이 되고 돌풍이 되며 소용돌이가 된다. 이는 공기의 자유로운 변이적 활동을 증명하는 것이며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파랑Das Blau
화창한 하늘은 빛나는 파랑을 품고 있다. 물과 공기는 파란색이 아니지만 파랑으로 느껴지고 유리컵 속의 공기나 물은 무색이지만 하늘과 바다는 우리에게 파랗게 다가온다. 공간이 깊어지면 모든 색은 파랑 속으로 사라진다. 즉, 파랑은 더 없이 깊고 “투명”해질 때 생겨난다. 파랑은 영원한 색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또한 파랑은 끊임없이 몽상하게 하는 능동적 색이며 공기와도 같은 자유의 색이다.
작가노트